나의 시비(詩碑) 앞에서
손용상
魂이 肉身을 떠나면
이제 갈 데는 여기가 될 것이다
일 년에 몇 번 아이들이 와주면
아내와 함께 나는 얼마나 반가울까
딸애가 혹 몸이라도 야위였다면
나는 그녀의 뺨을 살그머니 한 번쓰다듬어 볼 것이고
또 손주들에겐 ‘한 번 안아 보자’고 속삭일 것이다
아이들이 떠난 후 혼자가 되면
훌쩍 옛 집으로 날아가
서재의 책들도 한 번 훑어보면서
제 어미 몰래
칭얼대는 손주 녀석 고사리 손 꼭 잡아
소곤소곤 옛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고
소리 없이 날아 가
마당에서 흔들리는 나무 가지 위
새집 속 알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가만히 잡아줄 것이다.
그래도 잠을 못 이루면
신발 찾아 신고 구천(九泉)으로 달려가
한참 전에 먼저 가신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
작가로서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그 무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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