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아버지 / 노유섭

기사입력 2022.01.04 10:36

SNS 공유하기

fa tw gp
  • ba
  • ka ks url

    노유섭-아버지 2.jpg

     

    아버지


    노유섭



    당신과 눈 마주치기가 겁이 났어요

    그리고 한 번도 당신을 인정한 적이 없어요

    다만 기억의 저 켠에서

    당신은 나를 뒤쫓고

    -돈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지지리 돈도 벌지 못했어

    뒤쫓다 그만 풀썩 주저앉고

    나는 全南大로 난 큰 길을 따라

    대책없이 어둠 속을 마구 달리고 있어요

    이유도 없이, 다만 말이 없다고

    도대체 말이 없다고 술에 취하면

    으레 불거져 나온 부아가

    당신에게 한 번도 마음 주지 못한

    송곳 같은 나의 강퍅함이었어요

    술 빼고 남은 구석은 무언지-

    리어카 끌어오다 잃어버린 목돈 하며

    열차간에서 눈에 불 켠 학비도둑 막으려

    밤새 허옇게 입에 성에가 끼었다던 이야기가

    늘상 쥐뜯어먹던 당신의 고물이발기계로 삭아

    이어질 수 없는 빈 하늘 

    머언 전설구름 한 조각으로 스러지고

    묫돌 하나 없는 당신의 역사가

    누런 들판을 S커브로 돌아나갈 때

    논에서 잡아 배딴 붕어지짐만이

    하교 후 대학자취방 당신의 콩조림과 하나가 되어

    면벽한 시인 지망생의 초라한 촛불 아래 가물거릴 뿐,

    그렇게 길기도 길던 겨울- 

    가로 모로 한방 가득 빽빽한 식구들 머리 위로

    내내 펑펑 눈 내리던 밤의

    당신의 깊은 담배연기를

    지금이라고 내가 알 리 없지요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