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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노유섭
당신과 눈 마주치기가 겁이 났어요
그리고 한 번도 당신을 인정한 적이 없어요
다만 기억의 저 켠에서
당신은 나를 뒤쫓고
-돈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지지리 돈도 벌지 못했어
뒤쫓다 그만 풀썩 주저앉고
나는 全南大로 난 큰 길을 따라
대책없이 어둠 속을 마구 달리고 있어요
이유도 없이, 다만 말이 없다고
도대체 말이 없다고 술에 취하면
으레 불거져 나온 부아가
당신에게 한 번도 마음 주지 못한
송곳 같은 나의 강퍅함이었어요
술 빼고 남은 구석은 무언지-
리어카 끌어오다 잃어버린 목돈 하며
열차간에서 눈에 불 켠 학비도둑 막으려
밤새 허옇게 입에 성에가 끼었다던 이야기가
늘상 쥐뜯어먹던 당신의 고물이발기계로 삭아
이어질 수 없는 빈 하늘
머언 전설구름 한 조각으로 스러지고
묫돌 하나 없는 당신의 역사가
누런 들판을 S커브로 돌아나갈 때
논에서 잡아 배딴 붕어지짐만이
하교 후 대학자취방 당신의 콩조림과 하나가 되어
면벽한 시인 지망생의 초라한 촛불 아래 가물거릴 뿐,
그렇게 길기도 길던 겨울-
가로 모로 한방 가득 빽빽한 식구들 머리 위로
내내 펑펑 눈 내리던 밤의
당신의 깊은 담배연기를
지금이라고 내가 알 리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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