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비(詩碑) 앞에서 손용상 魂이 肉身을 떠나면 이제 갈 데는 여기가 될 것이다 일 년에 몇 번 아이들이 와주면 아내와 함께 나는 얼마나 반가울까 딸애가 혹 몸이라도 야위였다면 나는 그녀의 뺨을 살그머니 한 번쓰다듬어 볼 것이고 또 손주들에겐 ‘한 번 안아 보자’고 속삭일 것이다 아이들이 떠난 후 혼자가 되면 훌쩍 옛 집으로 날아가 서재의 책들도 한 번 훑어보면서 제 어미 몰래 칭얼대는 손주 녀석 고사리 손 꼭 잡아 소곤소곤 옛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고 소리 없이 날아...
지팡이의 이야기 배학기 첫새벽부터 더듬더듬 촉수를 세우고 어딜 가시나 세상은 온통 안개꽃 지천인데 나침판도 길잡이도 아닌 나 하나 붙잡고 저어새처럼 저어대며 어딜 가시나요 싸리문 열고 나서자 외양간 황소가 주인 얼굴을 살피고 닭장 속에는 장닭이 큰 소리로 주인 행차를 알리고, 암탉은 황금알인양 주인양반 발길을 두려워한다 주인양반은 험한 산길, 낭떠러지 길… 진흙탕을 날더러 인도하란다 돌 때리며 땅을 딛고 앞서 가라지요.
숲으로 박인혜 마른 도시를 떠나 숲으로 물소리로 마음을 적시고 숲 내음새로 가슴을 시원하게 발자국마다 다정한 벗들은 그곳에 있고 숲속 모든 것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건다
태극기 민문자 조국의 상징 태극기를 보면 경건하게 옷깃이 여며지고 벅찬 감격으로 눈시울이 젖는다 반만 년 유구한 역사의 힘줄 고난과 시련을 슬기롭게 이겨낸 얼마나 자랑스러운 그 깃발이냐 한류의 눈부신 문물을 싣고 한 분야의 정상에 올라서서 세계 어디서나 펄럭이는 태극기 소중히 간직하다 국경일이면 집집마다 대문 위에 내거는 그 정성 방방곡곡 되살리고 싶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민문자 한평생 홀몸으로 논밭 일구시고 어버이 섬기며 청렬하게 사신 어머니 평범 속의 비범, 눈매 서늘한 기품이여 금자동아 옥자동아 꽃으로 보여라 잎으로 보여라 주문 외시더니 성큼성큼 백수가 다가오네요 아! 어머니 우리 어머니 사랑합니다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와도 정감 어린 말씀 나누며 목화솜처럼 포근한 이웃 사랑 아름다운 솜씨, 향기로운 덕행으로 남다른 존경 받으신 우리 어머니 세월아 가지마오 세월아 가지마오 아! 어머니 우리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대의 향기 민문자 아름다운 소리에 귀 열고 새벽에 물 긷는 마음으로 오늘을 여는 향기로운 그대 인생의 환한 등불로 빛나는 희망을 안고 자라는 꿈나무의 큰 별이 되리
초침(秒針)의 의미 문재학 째깍 째깍 세월을 주름 잡으며 도도히 흘러간다. 만물의 변화를 안고 밤낮없이 환희의 순간 기쁨의 불꽃을 피우기도 하고 때론 고뇌의 칼날에 마음 조리기도 한다. 피해갈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작은 울림의 규칙적인 여운 그건 천지를 휩쓸고 가는 세월의 소리 오늘도 금쪽같은 초침(秒針)을 타고 천금 같은 시간이 흐른다.
하이얀 눈이고 싶어 諧蓮 류금선 살아간다는 것이 습관처럼 돼 버린 지루한 일상에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쏟아져 내리는 눈같이 하얀 전율로 무너지는 순백의 시간이 그립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인양 물질만 우상인 세상에 허물어져가는 인성의 가치 한 줌의 햇살보다 한 점의 바람보다 자신을 다 비우고 세상의 모든 빛깔위에 벌거벗은 언어로 쌓이는 아름다운 눈이 되고 싶다 이 세상 모두를 껴안는 무언의 몸짓 눈부신 탈속의 옷을 입은 하이얀 노래이고 싶다.
어머니의 강 諧蓮 류금선 밤마다 호롱불 아래 달빛이 강물 위에 외로이 뜨면 당신은 불면증만 깊어 갔지요 시름과 한숨은 강물을 닮아 끝없이 흘렸고 소금쟁이 잡으며 물장구치던 꿈 많던 시절에 우리는 당신의 슬픔이 가슴에 별로 뜨는 줄 몰랐어요 아버지 살아 생전 풋풋하던 향기는 어디 가고 주름 잡힌 웃음 자꾸만 작아져 가던 당신 우리에게도 흐르지 않은 강이 하나 생겼답니다.
목련꽃 사연 諧蓮 류금선 아지랑이도 술 취한 봄날 그대가 보내준 고운 햇살로 하얀 꿈꾸었습니다 진액 같은 속 깊은 순정으로 그대에게 다가가는 날 꽃구름 흐드러진 웃음으로 새록새록 가슴 훤히 열겠습니다 행복한 순간은 별도 달도 숨고 바람도 눈을 감았습니다 불붙던 사랑의 꽃불 그건 전생애에 감춰진 춤사위였습니다. ★ 사이버 시비
행복한 삶 송곡 노중하 이웃을 돌아보며 봉사하는 정신 어리석은 사람 이끌어주는 마음자세 선행을 가르치고 실수를 덮어주는 여유 탐욕에 눈이 멀어 방황하지 말고 번뇌 망상 씻어버리고 자연에 순응하며 순리에 만족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즐거움 먼 곳을 찾지 말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주변을 살피며 청정한 물과 같이 지혜로운 행복한 삶
소금 송곡 노중하 망망대해 물고기들의 생명수 미역, 다시마, 손을 잡고 놀던 나 대망의 꿈을 안고 육지로 여행하던 날 넓게 쳐진 거물에 갇혀 잉여 가된 몸 솔솔 불어오는 바람결 반짝이는 결정체의 다이아몬드 정든 고향을 멀리하고 배추와 결혼을 하였지 조석으로 만나는 다정한 식탁 김치찌개, 된장찌개, 두부찌개 바다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가족 누구나 즐겨 찾는 소금의 인생
그리운 친구 송곡 노중하 오월이면 생각나는 어릴 적 친구 바람에 나부끼는 청 보리 밭길 학교 갔다 올 때면 껌 대용으로 밀을 뽑아 씹었지 냇가에 발가벗고 목욕을 즐기던 그 시절 붕어도 잡고 산 가재도 잡았던 추억 만나지 못해도 마음 한구석 언제나 떠오르는 정숙, 명희 칠복이 꽃처럼 향기롭고 아름답던 동무 가는 세월 어느 누가 잡을 수 있나 검은 머리엔 흰서리가 내려앉았지 세월을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별들이 소곤대는 찬란한 밤하늘 조잘거리며 뛰어 놀던 옛 모습 인생 황혼...
시소를 타고 노유섭 아침 가고 밤 오고 밤 가고 아침 오고 절망 가고 희망 오고 희망 가고 절망 오고 그러기를 몇 날 끝날은 희망인가 절망인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닐 것 같지는 않은데 이후는 변함이 없다는데 그 무엇으로 맞이할 것이냐 산다는 것은 그 어디메쯤의 시소를 타고 눈물 혹은 웃음범벅의 달빛 비빔밥을 먹는 것이냐
파랑새와 무지개 노유섭 두어 숟가락의 현미죽을 한 알 한 알 씹으면서 두고 온 들판을 생각한다 한 사발 가득 흰 쌀밥을 먹으면서 생각지도 못한 들녘, 농부와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흔적을 떠올린다 삐비꽃은 피었을까 아득한 전설처럼 남은 유년의 회로 속에서 병상에서 깊은 삶의 첫 기억과 조우를 생각하듯 부족 속에서 그리하여 버림으로 인하여 도리어 잃어버린, 그리도 찾으려 했어도 찾지 못했던 파랑새, 그 언덕에 떠오르는 무지개를 바라본다
아버지 노유섭 당신과 눈 마주치기가 겁이 났어요 그리고 한 번도 당신을 인정한 적이 없어요 다만 기억의 저 켠에서 당신은 나를 뒤쫓고 -돈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지지리 돈도 벌지 못했어 뒤쫓다 그만 풀썩 주저앉고 나는 全南大로 난 큰 길을 따라 대책없이 어둠 속을 마구 달리고 있어요 이유도 없이, 다만 말이 없다고 도대체 말이 없다고 술에 취하면 으레 불거져 나온 부아가 당신에게 한 번도 마음 주지 못한 송곳 같은 나의 강퍅함이었어요 술 빼고 남은 구석은 무언지- 리어카 끌어오다 잃어...
죽겠다는 말 나광호 죽겠다고 하는 말 너무 흔하다 배고파 죽겠다, 짜증나 죽겠다, 아파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괴로워 죽겠다 너무 상투적이긴 하지만 이 같은 대화의 말들이 침통하고 암울하고 어두운 희망 없는 세상을 만든다 흑장미도 애기똥풀도 엉겅퀴도 심상의 눈에는 예쁘지 아니 하던가 말이 씨가 된다는 속설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라는데 비록 하찮고 허접스런 말 일지라도 희망의 말을 속삭이자 기쁘고, 즐겁고, 사랑스럽고, 예쁘고, 행복해 죽겠다는 긍정의 말들을
상선약수(上善若水) 나광호 산로에서 그늘을 이고 풀 섶에 앉아 걸어온 숨들을 풀벌레 울음 귀에 걸어 놓는다 홍염이 밀어내는 가쁜 숨들이 도랑처럼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산 아래로 굽어보이는 건 살아온 날들 추락과 비상을 수없이 반복한 흔적들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높이 오를 때 마다 살아온 인생의 굴곡이 깊다 산모롱이를 돌면 덧없던 삶이 지워지고 생각을 담아둘 또 하나 가슴이 열린다 상선약수(上善若水) 가장 아름다운 인생(上善)은 홍염 속 산을 오르는 고난일지라도 생각...
* 내 안의 우주 * / 안재동 내 안에도 세상이 있다. 새가 있다. 노랑할미새가 있고 은빛 찌르레기가 있다. 쇠종다리도 있고 까치도 있다. 그 새들이 울어 늘 새소리가 난다. 물소리와 바람소리도 있고 해와 달과 별도 있다. 내 안에도 작지만 그런 우주가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우주보단 훨씬 큰 우주이다. 너는 언제나 내 우주에 있고 너에게도 우주가 있다면 그곳에 나도 있었으면 좋겠다. 낮에는 티없이 푸른 하늘의 해가 되거나 밤에는 부서질 듯 찬란한 별이 되거나 아기 손처럼 보...
요나의 고래사냥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김혜영 그녀는 오래 전 부터 꿈꾸던 여름바다로 고래사냥 떠난다 동트는 미명에 쏘아보는 눈빛으로 시어의 작살을 던진다 내 심장을 뚫는 소리 요나의 고래는 들었을까
작가로서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그 무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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