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바다 池松 홍윤표 담장 없는 광활한 바다에 엎드려 세상을 캐는 어머니 오늘도 드넓은 바다에 나아가 고된 세상을 캔다 금쪽같은 시간 반나절 모으면 얼마나 되랴 시간을 모으고 모아보지만 모두가 행복한 쾌락의 바다가 아니다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고 바다를 캔다는 어머니들 세상모두가 어머니의 바다고 행복의 바다다 바다는 파란 장판을 깔고 온 동네 살피며 어머니를 모으는 바다 바다는 경로당이고 앵두나무 우물가 빨래터이다
살다 보면 허용회 살다보면 빠져나간 바닷가의 썰물 때문에 허전해 하는 뭍의 마음을 헤아릴 때가 있다 살다보면 애드벌룬처럼 부푼 생각들 때문에 두목답답해 하는 아비의 심정을 헤아릴 때가 있다
개 친구 허용회 개는 내 친구였고 술이라곤 부모님이 시키는 막걸리 심부름 때나 호기심에서 양은 주전자 꼭지를 빨았던 게 전부였던 유년 시절 종종, 엇나간 팔매질처럼 고샅길의 담을 넘어오는 소리가 있었으니 '술 친구는 개 친구여...' 아낙네가 제 서방한테 지르는 화통 소리다 이제와서 뇌 필름을 되감아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술판을 즐겼을 때는 나도 개 친구였는데 술판에서 주둥이를 건져 꾸덕꾸덕 말리자 개는 바람처럼 가뭇없이 사라졌다 새로이 연을 맺은 개는 살래살...
맑은 사람이 그립다 허용회 눈빛이 샘물 같고 가슴은 쪽빛 하늘 같아 사유의 풍향계가 실개천에서 노니는 중태기 같은 사람 맑은 사람을 보면 언제 어디서나 손이라도 치고지고 행운유수(行雲流水)처럼 순응하고 싶다 맑은 사람과 말을 섞고 몸을 비비면 몸 속에 백열등이 켜진 듯 제육감까지 가득찬다 맑은 사람과 한 공간에 갇히면 그 옛날, 어느 초여름 섬진강을 거슬러 오르던 은어의 수박향 같은 신선함이 어느새 온몸에서 묻어난다
선잠 쾨펠연숙 책상 위에 걸린 쟁반이 반달인줄 알았더니 눈 코 입이 달려있어 온달이 되었더라 왼쪽 오른쪽으로 굴리던 눈동자가 갑자기 화살이 되어 꽂힌다
별똥 따던 날 쾨펠연숙 잔 별들이 쏟아지는 초겨울 이야기를 따러 쿠담 길 들어선다 첫눈이 소복하게 쌓인다 떨어질 듯 말듯 별 끝에 매달린 별똥을 잡으러 쏜살같이 달려온다 그림자처럼 사라진다.
국제시장 쾨펠연숙 베를린에 떠들썩한 영화제가 개막된다 국제시장이 상영된다 유난히 까만 머리들이 영화관에 보인다 이들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광부와 간호사들이 화면을 스친다 그럴 때마다 자신들을 보듯 즐거워하고, 슬퍼하는 모습 옆에서 기웃거려본다 가슴이 울먹거린다 이들의 고통과 애정 어린 사연들 그 속에서 나도 그들과 호흡을 함께한다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조용히 씻어 내렸다 이런 애정 어린 사연을, 고통을 고국은 알고 있을까? 독일의 한국시민들 이제 국제시...
진달래 최택만 가을에 온 잎을 털어내고 깊은 잠 준비하던 네 모습은 나목(裸木) 내 가슴을 튼 너 겨우내 진통하던 삶 봄의 길목에서 긴 숨 내쉬고 연분홍 고운 빛으로 단장한 인고의 꽃 진달래여! 그 가냘픈 몸뚱이 하나로 수줍은 새악시 볼 같은 꽃술을 뿜어내니 온 산이 생명체로 변했구나
만추(晩秋) 최대락 억세 꽃이 만발한 산마루 자락에 붉게 물든 저녁노을은그 황홀함에탄성(歎聲)을 자아내게 합니다. 풀냄새가 그윽한 숲속으로 땅거미가 짙게 드리울 때, 어디선가 작은 돌개바람이 앞마당 돌담 사이로 살며시 빠져 나갑니다. 어둠은 달빛을 맞이할 쯤, 풀잎 뒤에 숨어있는 그림자를 데리고, 텅 빈 허공(虛空)속으로 훨훨 날아가 버립니다. 이슬방울로 갈증(渴症)을 해결하는 귀뚜라미는 깊어가는 이 가을밤에 슬픈 노래로 잠시나마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깡이 있어야 날제 천향미 해운대 백사장에 갈매기 무리가 먹이를 찾고 있다. 슬그머니 다가가 카메라 초점을 맞추는데 새우깡 파는 할머니 파도 같은 넉살로 ― 아따, 깡이 있어야 푸드득 날제 밉지 않은 너스레로 내 손에 들려준 새우깡 봉지 속 한 평생 깡으로 살아온 그녀 닮은 등 굽은 새우들 과자봉지 속에서 바스락거리고 있다 새우 한 마리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갈매기 무리지어 몰려온다. 겁 없이 손목에 앉아 발톱으로 깡을 모르고 살던 여자의 손끝 쪼아댄다. 무엇이 이처럼 급박하게 했을까 ...
낮꿈 조은재 커피 머신에차 한 잔 내려 소파에 앉아 홀짝거린다 아침나절에 미처 개지 못한 이브자리, 온기가 머문 온돌방 시집 한권에 취한 어설픈 교양 식곤증이 다가와 손을 내민다 이럴 땐 돼지꿈이라도 꿔야 하지 않을까 눈을 감고서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한 마리에 로또 숫자 조합하고 양 두 마리에 조상님의 음덕 기려 반짝이는 금괴나 주워볼까 매에, 매에…… 샤르르 뎅뎅 샤르르 뎅뎅 울리는 휴대폰 소리 낮 꿈을 금세 가로채간다
이슬 사랑 조성설 너를 적시고 나를 적시는 풀끝에 아롱진 눈망울 나를 버리고 너를 버리는 모자라지도 많지도 않은 사랑이겠지만 묻지 말고 홀로 가슴에 담을 일이다. 나의 가슴에
안개꽃 조남명 뒤에서 받치고 어울려만 준다 나타내려고도 난 체 할 줄도 모르고 너무 작아 속상하다 그러나 속은 멀쩡하게 들어찼다 늘 다른 꽃의 배경만 되어 안개 속에 가려있는 얼굴 없는 서러운 이름 깊이 들여다보면 갖출 것 다 갖춘 작지만 큰 꽃 제대로 보는 이 없어도 오밀조밀 생겨 은은한 그리움 같은 너 화려한 꽃보다 더 아름답다
동백꽃 조남명 녹다 만 하얀 눈 속에 핀 동백꽃 골짜기 시린 해풍海風에 시달려도 눈이 부실 듯 불이 붙은 빠알간 꽃이여 누구를 그리워 해 못 다 기다린 채 이 겨울 떨며 피었는가
풀꽃 정송전 하필이면 시멘트 틈새에 끼어 피었나. 제 그림자만큼 비켜나면 꽃밭에 꽃이 되련마는 별나게 살아도 결국, 한 세상일진대 고개 돌려 외면한 채 별빛에 젖은 그 눈망울 너는 다만 풀꽃으로 피었구나.
코스모스 정송전 무슨 여한 다시 남겨 놓고 비슷이 서서 하마 무얼 보일 듯 너울대고 이슬 털어 여덟 폭 도당치마 여미어 바람자락에 속살 드러내며 이제야 저린 발을 주무르며 소리 없이 서럽다 말하는가.
꽃이 피어나는 이유 정송전 당신의 숨결을 꽉 쥐어짜면 온통 진한 풀물이오. 그 풋내의 언덕으로 홀로 오르며 하늘에 당신을 그리오. 당신이 마구 달려와 어룽진 눈빛으로 허물어지면 비로소 나는 의식을 챙기오. 온 세상의 어둠을 밝히려 모습 내보이는 숨결이오.
진달래꽃 정송전 사르지 못할 것들은 모두가 다 아픔이렷다. 입김 번진 거울 속 한 올 한 올 떠오르는 걸 빗어 내리면 그 빛깔의 그늘 밑으로 푸름의 이끼가 돋는다. 지금도 벼랑 끝 안개 잡힐 듯 거기 서 있것다. 가까스로 손길 더듬어 아득한 하늘을 헤아려 본다. 노을빛 촘촘히 매달렸다 살 냄새 꽃그늘에 넘친다. 저 혼자 피었을까 숨긴 것이 있다면 불길을 돌려놓고 잎새로 피워냄이라. 시선 닿는 곳에 하늘로 오르는 모습이다.
삶 정송전 성에처럼 입김에도 흩어지는 것. 풋과일 속 색소로 숨어 있는 것. 손바닥에 파닥이는 꽃잎 같은 것.
내 이렇게 살다가 정송전 이미 죽어서 내다버린 이름 모를 분재 하나 주워다가 빈 화분에 심어 놓고 뿌리 내리고 잎이 나기를 바라면서 제법 떨림 같은 사랑을 퍼부었다. 포근한 햇살 가까이 줄기를 가만히 만져보니 화끈거리는 것 같다 마디 켜켜이 보조개 그늘 속에 세포들이 땀을 흘리며 헉헉대는 것 같다 그래, 분명히 속살을 여미는구나 싶은데 얼마나 사무치며 꿈꾸어 온 것일까. 내 영혼은 두 개로 늘어났다 참으로 신기한 나의 향수이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고 꽃피워 하늘에 도래질 할 때면...
작가로서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그 무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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